한국 사람들의 영어 강박증은 유난한 편이지요.
특히나 백인이 영어를 하면 그렇게 대단해 보이나 봅니다. ^^
예전에 들은 얘기입니다.
어떤 백인 여자가 다음달에 한국에 초등학교 영어 교사로 가게 되었다고 자랑을 하더랍니다.
자기는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한국에 있는 친구가 소개를 해서, 대학을 나왔다고 서류에 썼더니, 성적표나 졸업장도 보지 않고 받아주더라는 군요.
한국의 친구말에 따르면 "영어 잘하는 백인"의 천국이래나 뭐래나...
그 얘기를 듣고 정말 분노했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태어나고 사는 백인들을 “영어 잘하는” 순서대로 일렬로 세워놓고, 제가 그 중간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어디쯤 갈까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감히… 줄에 낄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드시지는 않는지요.
사실 저도 미국에 있으면서 저보다 영어를 못하는 백인을 본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오류에 사로잡혀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이런 생각뒤에는 어떤 가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즉 말하기=영어 실력 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말하기”라는 것에 “발음”이라는 것을 무지하게 강조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나 실제로 “영어 실력”이라는 것은 “말하기”만으로 계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쓰기도 있고, 읽기도 있지요.
실제 미국에서는 글을 못 읽고 못 쓰는 사람들이 하나의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 외국인으로써 미국에 살면서 그런 상식적인 일들이 사실로 느껴지지는 않는달까요?
그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내뿜는 괴물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
오늘은 그런 관성을 깨었던 이야기들을 좀 소개해 볼까 합니다.
처음으로 소개할 분은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던 어떤 백인 아저씨입니다.
일단 프라이버시를 위해 A씨라고 표기하겠습니다.^^
이 A씨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며 저희 학교에서 각종 실험 기계 수리나 간단한 공사등을 하는 Maintenance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날은 저희 연구실의 기계 한대와 연구실 옆 문짝을 고치기 위해서 오셨는데요.
그분이 작업을 끝내실 무렵에 마침 교수님이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보통 그런 경우, 연구실에 남아있는 사람에게 메세지를 남기는 편인데, 이 분의 경우 그날따라 굳이 글로 메세지를 남기시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어느쪽이든 상관없으니 그러라고 하고 메모장과 볼펜을 주었지요.
저는 하던 일이 있으니 계속해서 제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글을 쓰면서 제게 몇 몇 단어의 스펠링을 물어보더라구요.
딱 펜을 잡자마자 받는 사람을 어떻게 써야할 지 부터 묻더라구요.
닥터(Doctor)라고 해야 하는지 프로페서(professor)라고 해야 하는지 부터 묻고, 자기는 프로페서를 어떻게 쓰는지 모른답니다.
걍 (짧으니까) 닥터라고 하라고 했더니, 닥터의 스펠링을 물어보는 식이었습니다.
아니, 이사람이 장난하나? 백인이 나한테 스펠링을 물어보다니…
대화를 해봤으면 내 영어 수준을 알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건성으로 대답하며서 제가 할 일을 했지요.
그런데 메세지를 쓰면서 본인도 확신을 못하면서 혼잣말로 이게 맞는 거지? 하면서 쓰더라구요.
아저씨가 나간 후 뭐라고 썼나 궁금해서 메세지를 슬쩍 보았습니다.
몇 줄 안되는 짧은 메세지였는데, 문법은 그렇다 치고 제가 수정을 해 주었음에도 스펠링이 틀린 단어가 보이더군요.
특히 바로 눈에 들어온 것이 I am sure를 I am shure라고 썼던 것입니다.
그 단어를 강조하려고 했던지, 크게 썼더라구요.
그때서야, 아.. 나한테 물어봤던게 진짜 스펠링을 몰라서 그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에게 스펠링을 잘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 미안하기도 했구요.
미국 사람들은 당연히 나보다 모든 면에서 "영어만큼은" 낫다라는 생각이 제 안에 자리잡고 있음을 깨달았지요.
물론 한 두단어 철자를 틀릴 수 있습니다.
Sure나 Shure나 발음이 똑같을(?) 테니, 어떻게 보면 틀린다고 해서 이상한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그 당시의 제게는 미국인이 (제게는) 간단한 단어의 철자를 틀린다는 것이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디어로 눈을 돌려만봐도, 그런 예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프리즌 브레이크에서도 수크레가 마이클 스코필드에게 passion의 스펠링이 어떻게 되냐고 묻는 장면이 나오지요.
이 수크레라는 배역은 엑센트는 좀 있지만,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캐릭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미국인의 25%가 문법과 철자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뉴스도 나왔었지요.
하물며 전직 대통령인 Mr. Bush도 문법을 많이 틀리면서 연설하기로 유명했다는데요.
(명사를 동사화해서 쓰는 능력이 탁월했다고들 하지요 ^^)
Amaury Nolasco by ♥ China ♥ guccio
이렇게 일상적으로 영어를 바르게 쓰지 못하는 미국인을 매체를 통해 접하면서도 그때의 그 사건이 저에게는 굉장히 쇼킹한 사건이었습니다.
아마도 외국인으로써 미국에 와서 살면서 흔히들 말하는 “거지도 영어는 완벽하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은 거지도 “발음은” 완벽하게 한다… 가 맞는 말이겠지요.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제 첫 환자였는데 백인에 중년 아주머니였습니다.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멋진 여성이신데요.
대화를 하는 도중 제가 force(포스)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oooahaaaa ooo..." by icedsoul photography .:teymur madjderey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중 꽤 많은 분들이 들어보신 단어라 생각합니다.
최소한 스타워즈를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요.
보통 “힘” 이나 “힘을 가하다” 정도의 뜻으로 쓰이는데요.
이 force라는 단어를 이 아주머니가 몰랐던 것입니다.
가끔 영어로 말할 때 한 단어가 막히면, 다른 단어로 말하거나 풀어서 설명해야 하는데, 첫 환자를 보는 날이라 무지 떨려서 이런 돌발상황이 되니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스타워즈도 안 본 미국인이 있단 말인가.. 라는 생각을 했지요.
(나중에 물어보니 진짜로 영화는 안보신답니다. ㅠㅠ)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배우는 단어의 수준이 미국인의 그것을 능가할 때가 있습니다.
아주 쉬운 단어라고 생각할 때도 말이죠.
왜냐하면 실제 생활영어에서 고급영어를 쓰지 않는 미국인들은 최대한 단순하게 말하기 때문이지요.
고맙다는 뜻으로 흔하게 쓰이는 I appreciate ~이라는 표현을 알아듣지 못하는 미국인이 있다는 얘기도 예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어휘력의 부재는 글로 들어가면 더 심해지는데요.
저의 연구 담당 교수님은 독일인인데, 미국에서 오래 계셨었고, 독어가 베이스다보니 영어도 꽤 능숙합니다.
특히 글과 문법은 상당한 수준이지만, 여전히 중요한 글을 쓸 때는 미국인에게 마지막 점검을 부탁하시고는 합니다.
네이티브만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문법적으로는 맞아도 읽기에는 어색하다던지 하는 것들이지요.
예를 들어 I don’t think I can do that 이랑 I think I can’t do that은 풍기는 뉘앙스가 많이 다른 것처럼요.
그분이 제가 공식적인 글을 써서 마무리해야 때면 이런 조언을 하십니다.
미국 사람에게 마무리를 도와줄 것을 부탁하되,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사람을 찾아라.
대다수의 미국인은 우리(외국인)보다 문법과 작문이 약하다…
(물론 영어 문법과 작문을 어느 정도 이상 공부한 외국인의 경우입니다.)
라고 말이죠.
미국인도 영어를 못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무자격 외국인 강사에게 우리 아이들의 영어를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