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y History/UB SDM

미국 대학의 해부학 실습 이야기

오늘 해부학 실습실에서 학생들이 카데바(Cadaver)에 장난친 사건을 읽으면서 일학년 첫학기에 들었던 해부학 시간이 생각이 났습니다.

치과대학 첫학기에 가장 중요한 과목이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하는 과목이 해부학 시간이었습니다.

학점 수도 높고 외워야 할 것도 많지만, 직접 해부를 하는 것은 정말 힘이 드는일입니다.

그만큼 모든 학생이 긴장하고 들어가는 시간이지요.

 

첫 실습시간

첫 실습시간에 8명이 한 그룹에 배정받고 카데바(Cadaver)을 앞에 둔 상태에서 담당 교수님께 시신에 대한 마음가짐과 시신에 대한 예의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곧이어 함께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부 실습의 첫 시간을 할애하여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어떻게 해부하느냐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시신에 대한 존중(respect)과 윤리(Ethics)였습니다.


또 첫 시간에는 시신의 나이, 성별, 사망 원인을 나열한 리스트를 공개하고, 혹시나 자신이 한다리 건너서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신고하도록 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시신의 인권보호를 위해 그 카데바는 사용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해부실 전경 – University at Buffalo – from www.smbs.buffalo.edu>

 

해부실은 학기 내내 의대와 치대가 공유하는데 수업을 듣는 학생이 아니면 문의 보안장치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해부실 내에는 감시 카메라가 있어서 해부실에서 무언가를 먹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부정한 행동을 한 경우, 해부학 과목에서 F 학점을 받게 되는데, 이 경우는 재수강을 해도 F를 받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해부학을 패스하지 못하면, 졸업을 못하지요.


해부학 시험은 어떻게 볼까?

시험은 모두 Practical (테이블위에 문제가 있고 시간이 되면 테이블을 옮겨다니며 답을 쓰는 시험) 형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100% 주관식이구요.

카데바(Cadaver)에 직접 문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X-ray나 CT를 읽거나, 뼈 모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은 핏줄이나 신경위에 핀을 꽂아놓고 이게 뭐냐고 묻는 식이지요.


가장 재미있는 문제는 Live Station이란 것입니다.

교수님이 분장을 하고 환자 연기를 하면, 학생이 진단을 하는 시험입니다. ^^

들어보면 재밌을 것 같지만, 시험 볼 때는 정말 조마조마한 시간입니다. -_-;

짧은 시간안에 뭐가 문제인지 찾아내야 하니까요.

 

워낙에 외울 내용이 많은데다, 커데바마다 조금씩 몸이 다르기 때문에, 시험 일주일쯤 전부터는 수업이 끝난 저녁시간에는 해부실에 의대와 치대 학생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총 20구가 넘는 시신을 다 보려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12시를 넘기는 경우도 흔하지요.

해부실에서 처음 맞는 12시는 ... ...

 

Anatomy Memorial

이렇게 힘들게 해부학을 마치면 학기 후 한달 쯤 뒤에 Anatomy Memorial (해부학 메모리얼) 이라는 행사를 합니다.

 

"The event consists of student performances, a faculty speech, and anything else that the students decide is appropriate to honor these people. … … to commemorate those who willingly donated their bodies for us to learn. I believe this is the least we can do for those people”

 

위는 메모리얼 당시에 그 의의를 전달했던 글인데요.

제 짧은 번역을 덧붙이면 이렇습니다. (의역입니다.)

 

이 행사는 학생들의 공연, 교수의 연설, 그리고 학생들이 시신 기증자를 기념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이든 포함될 수 있습니다. … … 이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 놓은 분들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시신 기증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가족들을 학교에 초정해서 시신 기증자를 기념하는 행사를 하는 것이지요.

보통 한 구의 카데바를 8명의 학생이 공유하는데, 카드에 감사하다는 인삿말을 써서 가족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물론 모두 강제성은 없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참여합니다.

 

학생들이 돈을 기부하여 선물도 전달하구요.

시신의 신분은 철저히 감춰지기 때문에 학생과 가족이 서로 모르게 진행이 되지요.

 

행사 당일에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여러가지 행사를 합니다.

짧은 연극도 하고, 악기 연주나 중창도 하고, 시 낭송도 하고, 에세이도 읽습니다.

한달 이상을 준비하는데, 저희때는 브람스의 레퀴엠을 연주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한 학기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시신 기증자의 귀중한 헌신으로부터 얻었는지에 대한 것이 전체 스토리입니다.

 

이렇게 해부학 시간의 처음과 끝은 시신 기증자에 대한 감사와 존중을 배우는 것에서 시작해서 학생들이 실제로 느낀 감사를 표현하면서 끝나게 되지요.

 

아직도 가끔 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를 맡을 때면, 해부학 시간이 생각이 납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만큼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배움은 수많은 분들의 희생위에 올려진 것이겠지요.

 

이번의 사건을 통해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아직도 해부학 시간을 통해 시신 기증자의 고귀한 마음을 가슴 깊이 배우는 학생들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합니다.

한 번의 사건으로 해부학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들이 매도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제가 겪었던 경험을 짧게 올려봅니다.